초막절과 마지막 큰 날 2026: 그리스도께서 거하러 오시는 곳
최종 수정일: 10월 14일
나팔이 울렸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에게 밖으로 나가 나뭇가지로 오두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그 안에서 지내며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수코트)은 2026년 9월 25일 금요일 해 질 녘부터 10월 2일 금요일까지 이어지고, 이어서 10월 3일 토요일이 마지막 큰 날입니다. Solo Faith Church는 각 날의 낮 시간, 오후 1시에 모입니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신 절기이며, 그 이유는 이 절기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들어와 사시는 것에 관한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기의 중심은 예수(예슈아) 그분입니다.

당신을 지켜 줄 수 없는 초막에서 보내는 한 주
“일곱째 달 열닷새 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레위기 23:34). 지시는 일부러 낯설게 주어졌습니다.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하신 줄을 대대로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레위기 23:42–43).
초막은 형편없는 집입니다. 지붕은 별이 보일 만큼 얇게 덮어야 합니다. 문을 잠글 수도 없습니다. 비바람도 막지 못합니다. 바로 그것이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튼튼한 집과 돌담이 있는 땅에 막 들어온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해마다 한 번, 그 담 밖으로 나와 자신들을 지켜 준 것이 담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지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한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백성은 금세 엉뚱한 것을 신뢰하게 됩니다.
수장절로서의 초막절
이 절기의 또 다른 이름은 농사에서 왔습니다. 연말에 밭에서 수고하여 얻은 것을 거두어 저장하는 수장절입니다(출애굽기 23:16).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추수, 들어올 것은 모두 들어온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미지를 부드럽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쓰셨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태복음 13:39). 그리고 요한은 마지막 추수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보았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서 있었습니다(요한계시록 7:9). 마지막 추수 때, 보좌 앞의 종려 가지. 거두어지는 곡식은 바로 사람들입니다.
말씀이 장막을 치셨습니다
출애굽기 이후 하나님께서 분명히 밝히신 소원은 가까이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백성이 성소를 지으면 그들 중에 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애굽기 25:8). 그리고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출애굽기 40:34). 장막 안에 계신 하나님, 백성 한가운데 진을 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 절기 전체가 담으려고 지어진 그 문장을 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요한이 “거하시매”에 쓴 단어는 장막을 친다는 뜻의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광야에서 장막을 가득 채웠던 영광이 육신을 입고 갈릴리를 걸어 다니셨습니다. 초막절은 우리가 야영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영하시는 그림입니다. 우리와 함께, 초막처럼 연약한 몸으로, 일부러 말입니다.
하나로 묶인 네 가지 가지
레위기 23장 40절에서 하나님은 첫날에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이레 동안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네 가지 서로 다른 식물입니다. 열매와 향기가 모두 있는 것, 둘 다 없는 것, 그리고 그 사이의 두 가지. 이것들이 함께 묶여 하나의 예물로 들어 올려집니다. 바울은 가지 없이 교회에 대해 같은 말을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12:12). 서로 다른 사람들, 똑같지 않은 은사가 한 다발이 되어 하나님 앞에 들어 올려집니다.
특히 종려나무 가지를 눈여겨보십시오. 이 가지는 초막절에 등장하고,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님을 맞으며 이스라엘의 왕을 찬송한 무리의 손에도 들려 있었으며(요한복음 12:13), 보좌 앞에 선 구속받은 사람들의 손에도 들려 있습니다(요한계시록 7:9). 같은 가지가 처음과 중간과 끝에 나타납니다.
여덟째 날, 그리고 그날 일어서신 분
절기는 이레 동안이지만, 성경은 하루를 더합니다.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라고, 그날은 거룩한 대회라고 말씀합니다(레위기 23:36; 민수기 29:35도 보십시오). 칠은 완성된 한 주의 수입니다. 팔은 그것을 한 걸음 넘어섭니다. 한 주기가 닫힌 다음 날, 새로운 무언가의 첫날입니다. 요한은 이 여덟째 날을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장면을 설정합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웠다고 기록한 뒤(요한복음 7:2), 한 장 전체에 걸쳐 이야기를 마지막 날까지 이어 갑니다. 그날 예수님은 어떤 랍비도 하지 않은 일을 하십니다. 무리 한가운데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38 (개역개정):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은 그 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한복음 7:39). 목마름이라는 이미지도 우연히 고른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이미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이사야 12:3)라고 말했고, 스가랴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리라고 약속했으며(스가랴 14:8), 같은 장에서 열방이 해마다 올라와 초막절을 지키리라고 말했습니다(스가랴 14:16).
여기서 정직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는 인상적인 것보다 정확한 것을 택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후대의 유대 문헌은 이 절기 동안 성전에서 행해진 두 가지 의식을 기록합니다.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 제단에 붓는 의식과, 성전 뜰에 큰 등불을 밝히는 의식입니다. 이 기록들은 모세의 책이 아니라 유대 역사와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도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물에 대해 외치는 한 사람에게 무리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그분이 왜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한복음 8:12)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부 내용을 성경이 아니라 유익한 배경 정보로 여깁니다. 권위는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초막이 향하는 곳
성경에 나오는 모든 임시 거처는 영원한 거처를 가리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요한은 이런 선포를 듣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요한계시록 21:3). 그 큰 무리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고 말했습니다(요한계시록 7:15).
이것이 가을 절기들이 세 단계로 그리는 큰 흐름입니다. 나팔이 왕을 알리고, 제물이 죄를 해결하며, 그다음 하나님께서 들어와 머무십니다. 선포, 속죄, 거하심. 이 순서를 더 낫게 바꾼 사람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즐거워하라는 명령 — 그리고 그 안에 이름이 불린 사람들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명령에 덧붙이신 손님 명단을 읽어 보십시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신명기 16:14). 객. 고아. 과부. 하나님은 가족끼리의 사적인 잔치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져올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는 기쁨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교회가 무료 온라인 푸드뱅크를 운영하고, 직접 푸드 팬트리에 갈 수 없는 Concord와 Cabarrus County 가정에 DoorDash로 식료품을 배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용도, 서류도, 판단도 없습니다. 성문에 있는 과부를 빼놓는 잔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잔치가 아닙니다. 식료품이 필요하시면 Solo Faith Church 무료 온라인 푸드뱅크에서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교회가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
Solo Faith Church는 폴리캅과 십사일파(쿼토데시만)의 흐름에 선 초교파 공동체입니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에게서 배운 사람으로, 주변 교회가 사도들의 본을 후대 사람들의 관습과 바꾸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받은 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우리도 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성경은 충분하며,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관행 위에 예배를 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한 주를 의무가 아니라 기념으로 지키며, 바울의 마음이 곧 우리의 마음입니다. “명절을 지키되”(고린도전서 5:8) — 겉모양이 아니라 실체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어떤 절기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분께 향합니다. 다른 날을 지키거나 아무 날도 지키지 않는 신자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해마다 한 번, 허술한 초막 안에 서서 지붕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실제로 우리를 붙들고 계셨던 분이 누구신지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십시오
2026년 초막절은 9월 25일 금요일 해 질 녘에 시작됩니다. 첫 모임은 9월 26일 토요일 오후 1시이며, 절기는 10월 2일 금요일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 큰 날, 곧 여덟째 날이자 예수께서 일어서서 생수에 대해 외치신 날은 10월 3일 토요일이며, 이날도 오후 1시에 모입니다. 모든 모임은 587 Old Charlotte Rd SW, Concord, NC 28027에서 열리며, 현장 예배와 생중계로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자녀들도 함께 데려오십시오. 우리는 함께 예배하며, 아무도 다른 방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목마르시다면, 그 초대는 이천 년 전 바로 이 절기에 주어졌고 지금까지 철회된 적이 없습니다.
Solo Faith Church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초막절이 다른 두 가을 절기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나팔은 왕이 오신다고 말하고, 속죄는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절기는 그분이 오신 목적이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Concord에는 하나님에 대해 멀리서 들을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번 주는 우리 동네로 이사 오신 하나님에 관한 시간입니다.
초대합니다 —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해요
Solo Faith Church는 587 Old Charlotte Rd SW, Concord, NC 28027에서 토요일 안식일과 주일 오후 1시, 그리고 절기 당일 오후 1시에 모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토요일이나 주일 오후 1시에 함께 예배드립시다.
주 안에서,
더그 목사와 Solo Faith Church 드림
지역 사회 지원 안내: 이 가르침 글은 Concord와 Cabarrus County를 위한 Solo Faith Church의 지역 저널리즘 사역의 일부입니다. Solo Faith Church의 폴리캅 신앙 고백, 성경(영어 원문은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했으며, 이 한국어판은 개역개정에서 인용하고 일부는 요약해 옮겼습니다), 그리고 Solo Faith Church 지도부가 직접 제공한 2026년 절기 일정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성경 이후의 유대 문헌을 언급한 부분은 본문에 그렇게 밝혀 두었습니다. 절기 날짜는 계산된 히브리력을 따릅니다. 정확한 저녁 시간은 교회에 확인해 주십시오.




댓글